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문단 편집) == 사생활 및 개인사 == 르네상스 3대 거장의 다른 2명을 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레오나르도]]는 기본적으로 성격이 꼬장꼬장하고 [[성관계]]를 질색하는 데다가 여자를 경멸했지만 언변이 능했고, 잘생긴 데다가 외출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에는 당시로서는 나름 센스 입게 잘 차려입고 다니고 박학다식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샀다. 그래서 그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주변에는 늘 그를 숭배하는 젊은 청년들이 따라다녔다.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처럼 꼬장꼬장한 면이 없이 고용주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데다가 잘생겼고 본인 역시 여자를 좋아했기에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 덕에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반면 미켈란젤로는 기본적으로 못생긴데다가, 본인도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길거리로 나올 때에도 작업 중 지저분해진 몰골 그대로 다녔다. 거기에 라파엘로처럼 원만한 성격도 아니고 레오나르도처럼 꼬장꼬장하긴 해도 매력적인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거만한 성격이었고, 독설을 자제하지 않아서 [[대인관계]]가 나빠 친구도 없었다. [[메디치]] 가문에서 수학하던 시절 동문들에게 독설을 내뱉었다가 토리지아노라는 친구에게 주먹으로 코를 맞아서 코뼈가 주저앉은 적도 있었으며[* 이후 토리지아노는 로렌초의 총애를 받는 미켈란젤로를 구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피렌체를 떠나게 된다. 다만 미켈란젤로가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토리지아노에 대한 독설을 내뱉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애초에 미켈란젤로의 성미를 고려한다면 설득력이 없진 않는 대목이다.] 심지어 동문들에게 미움받아 따돌림을 당한 적도 있었다.[* 이 토리지아노라는 양반은 훗날 미켈란젤로의 죽빵을 날린 일화를 [[조르조 바사리]]에게 자랑스럽게 떠들었다고 한다. 주먹이 코에 닿는 순간 뼈와 연골이 흘러내렸다고] 또한 이 항목에 여러 번에 걸쳐 나오지만 윗사람이라고 예외는 없어서 비위를 맞추기는 커녕 수틀리면 [[교황]]에게도 독설을 하고 대들어서 화가 난 교황에게 얻어맞았으며 더는 일하기 싫어서 도망가는 등 위의 두 사람과 달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천재의 이미지였다. 또한 사보나롤라와 개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매우 금욕적이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문학 작품이 [[단테]]의 [[신곡]]이라는 데에서 그의 성향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술도 거의 하지 않았고, 소식가였고 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레오나르도]]마냥 경멸했던 데다가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아서[* 아버지와 동생들이 걸핏하면 돈을 달라고 하니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지출이 많았지 본인의 사치를 위해서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율리오 2세|교황]]에게 돈 안 준다고 보챈 것도 돈을 밝힌 게 아니라 '''[[율리오 2세]]가 [[열정페이|줄 돈을 안 줘서 그런 것이다.]]''' 아무리 예술혼에 불타고 있어도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특히 율리오 2세는 일 시키고 나서 미켈란젤로한테 1년이나 보수를 안 주기까지 했다. 오히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를 맡게 되며 자신의 전임자였던 상갈로 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돈 욕심이 나서 그러지?' 라는 비방을 받자 무보수로 일 할 것이라 천명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장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금욕적인 생활도 한몫 했을 것이다. 대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예술에 쏟았고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은 동시대 모든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다. 기실 현재 각종 패션쇼, 사진촬영에서 모델들이 과장되면서도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것[* 이를 '콘트라포스토'라고 한다. 사람은 일부러 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러운 상태에선 뻣뻣하게 어깨와 골반이 평행되게 서있지는 않다. 자연스러운 포즈는 어깨와 골반의 불균형에서 가장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며, 이 포즈 기법을 통해 묘하게 뻣뻣하고 자연스럽지 못했던 미켈란젤로 이전의 예술품들은 이 때를 기점으로 '자연스러운' 포즈, 더 나아가 과감한 포즈로까지 발전하게 된다.]의 시발점은 이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이전까지의 회화를 보면 모델들이 이렇게 인체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포즈를 취한 적이 없다. 회화에 있어서 미켈란젤로의 업적을 한마디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긴 하지만, 그가 남긴 가장 큰 의의를 꼽으라면 역시 '''인체의 역동성을 하나의 미학으로 발견한 것'''을 들 수 있다. 비단 이런 역동성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스케일이 거대하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스케일, 최후의 심판의 스케일과 그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미켈란젤로의 작풍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 그야말로 활화산과 같았던 예술인. 단순히 스케일만 큰 게 아니라, 남긴 작품도 상당히 많다. 뭐 미켈란젤로도 사람인지라 모두와 원수를 지고 산 것은 아니었다. 못생긴 외모, 괴팍한 성격, 금욕적이기까지 한 일상 생활을 가진 그였지만 인류사에서도 이름을 영원히 남길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실력 자체만으로도 카리스마가 있었다. 거기에 금욕적인 생활이 더해지니 어떤 사람들은 그를 마치 현자처럼 우러러 보기도 했다. 사실 바꿔 말하면 미켈란젤로는 수평적인 인간관계는 별로 없었다. 항상 그를 찍어누르고 고용하는 사람들 아니면 그를 일방적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극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항상 생활고와 건강 문제, 돈을 요구하는 가족들과의 불화 때문에 한 개인으로서는 굉장히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다. 회고록에서는 아예 자살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